[칼럼]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 Empathy(공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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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5-03본문
돌이켜보면 저는 공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감해야 한다”는 말은 마치 도덕 교과서의 한 문장을 외우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맞는 말이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가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갈등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TV 예능과 영화, 책 속의 다양한 갈등 장면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사이의 갈등 한가운데에는 늘 ‘공감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읽게 된 책이 영국에서 보육사이자 작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일본 출신의 브래디 미카코가 쓴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였습니다.
제목은 영어 관용표현 'To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책은 Empathy와 Sympathy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Sympathy가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거나,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정서적 반응이라면,
Empathy는 딱히 가엽지 않더라도, 심지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보는 지적 작업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Sympathy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인 반면, Empathy는 의식적으로 확장하고 훈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공감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익힐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스스로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겨왔기에, 타인을 깊이 공감하는 일은 현생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는 체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워서 기를 수 있는 능력이라니—머릿속에 형광등이 켜지는 기분이었습니다.
Empathy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감정적 공감으로,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지적 공감으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특히 인지적 공감은 인상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전염되는 상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고 타인의 입장으로 이동해 보는 상상력입니다.
말 그대로 ‘자기 신발을 벗고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작업입니다.
이 능력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도 경험과 훈련을 통해 충분히 기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공감 능력을 훈련하는 방법도 친절하게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감정 리터러시(Emotional Literacy)'입니다.
감정 리터러시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언어화하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으로,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고 이름 붙임으로써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도 자기 안에서 적절한 언어를 찾아 이해하도록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 대목에서 비폭력 대화(NVC)를 처음 배웠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NVC의 창시자 마셜 로젠버그는 왜 사람들이 인간 본연의 선함—서로의 삶에 기여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을 잃고 서로에게 폭력을 쓰게 되었는지,
반면 왜 어떤 이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지를 오랫동안 탐구했다고 합니다.
그 연구 끝에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말하는 방식이 관계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깨닫고 비폭력 대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처음 NVC를 배울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느낌'과 '욕구'에 대한 개념이었습니다.
느낌은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으로, 생각과는 다릅니다.
욕구는 그 느낌의 원인이며,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어떤 욕구를 충족하려는 시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 감정의 뿌리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가까운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감정은 불안과 서운함이었고, 그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감정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때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나타내는 수많은 표현들을 접하면서 저는 마치 감정이 무지개의 스펙트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색은 몇 가지 되지 않지만, 실제 무지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색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처럼 감정 역시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 리터러시는 바로 그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 감정을 제대로 알아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감정의 뿌리에 있는 욕구까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구는 인간 모두가 보편적으로 지닌 것이어서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그 감정의 뿌리에 있는 욕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욕구를 이해하는 순간 연민이 생겨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욕구는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기에, 상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뒤에 있는 욕구를 발견하는 순간,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욕구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상대의 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 저런 감정을 보이는지,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다가가야 합니다.
그 노력의 핵심이 바로 경청입니다. 경청할 때는 나의 신념과 가치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언어와 감정을 따라가 보아야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나, 진정한 누군가라는 개념에서 해방되는 일. 그것은 소속된 아이덴티티가 하나라는 생각에서 해방되는 일이다.
단 하나여야 하고 하나인 것이 훌륭하다는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사람은 자기 신발 한 짝에 집착하지 않고 타인의 신발을 신기 위해 자기 신발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최근에 읽은 《인정의 기술》에서 만났던 '변증법'이 떠올랐습니다.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에서 나온 이 개념은 '둘 중 하나'라는 관점을 '둘 다 가능하다'는 관점으로 전환시켜, 상반된 것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일리 있는 점을 찾다 보면, 흑과 백으로 나누던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더 온전히 볼 수 있게 됩니다.
비판은 빠르고 편하지만 결국 더 고통스럽습니다. 옳고 그름에 집착할수록 두려움, 분노, 자기혐오, 결핍감이 뒤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 하나만이 옳다'는 믿음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일리 있는 점을 찾는 일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상대방의 욕구를 찾는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버림받고 싶지 않은 욕구,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구—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어느새 내 신발을 벗고 상대방의 신발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반드시 동의하지 않더라도,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하는 그 순간, 비로소 상대방의 신발을 신을 수 있게 됩니다.
공감은 훈련하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능력입니다.
감정보다 논리를 앞세우는 ‘대문자 T’ 였던 저도 최근 들어 인지적 공감 능력이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이 훈련이 결국은 저 자신을 구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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